기대하지 않는 자식이 성공한다.

참부모가 되는 첫번째 지름길은 자식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참 말처럼 쉽지가 않다는 것이 진리이다.

이 험한 세상 살아가면서 내 자식이 다른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집에는 내가 사내구실한다고 아내와 으쌰으쌰해서 저질러놓은 고추달린 아들놈 9살 6살 둘이 있는데...
제 3 자적 시각으로 요리조리 고놈들을 뜯어보고 살펴보면...

첫째놈은 똘똘하고 논리적이며 수학을 너무나 좋아하는 반면, 성격이 약간 까칠하여 내 아들이지만 얄미워서 쥐어박고 싶은 충동을 가끔 느낀다.
그리고, 초교 2 학년인데 운동신경으로 따지면 100 명중에 약 99 등 정도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분명 한놈 정도는 우리아들보다 못한 놈이 있을 것이다. 분명히...)
공을 잡으라고 던져주면, 눈으로 입력된 시각정보를 통해 머리속에서 그 공이 자기쪽으로 오는지를 판단하고, 손발이 움직이도록 지시하여, 그 손발이 그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까지 대략 2 초 정도 걸리는 듯하다.
2 초인지 3 초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공이 더 빠른건 확실하다.

첫째놈 한줄요약 : 똘똘, 논리, 까칠, 몸치

이와는 달리 6 살 둘째놈은 배려심이 많고 동물과 자연을 무척 좋아하며 활동적이고 나를 닮아(?) 사랑넘치는 스킨쉽을 좋아한다.
배도 좀 나와서 6 살 먹은 놈이 이미 아저씨 몸매로 아내와 나의 외모컴플렉스를 부추긴다.
성격은 매사 좋은게 좋은거...
명석함보다는 둥글둥글하게 넘어가는 성격이어서 가끔 첫째와는 다른 종류의 울화통과 걱정을 동반한다.

둘째놈 한줄요약 : 배려, 자연, 몸꽝(ㅠㅜ), 두리뭉실

물론 위의 내용들은 약간의 과장이 섞여있긴 하다.
오랫동안 지켜보면 절대 단 몇줄로 요약될 수 없는 내 자식들 만의 상큼한 매력과 능력들이 넘쳐나니까 말이다.

어쨌건 이런 성향의 두 아들놈의 미래가 궁금하여 점쟁이는 아니지만 종종 머리속에 나름 그림을 그려볼 때가 있었다.

"여보, 우리 복권맞으면 뭐할까??"
오랫만에 복권을 구입한 부부의 흔한 잠자리 대화처럼,
자식의 멋드러진 미래를 상상해보는 것은 아이를 가진 부모들의 흔한 레파토리일 것이다.
아마도 스스로가 그리 되지 못한 자격지심에 대한 한풀이었으리라.

점이 딱 들어맞기를 염치없이 기대하면서 큰놈의 미래에는 은근슬쩍 의사, 교수라는 직업을 끼워맞춘다.
그리고, 둘째 놈의 미래에는 수의사, 그린피스 활동가, 사업가라는 또 다른 분야의 멋스런 직업들을 떠올린다.
이런 직업을 끼워맞춘 것이 나름대로는 아이들의 성향을 고려한 선택이었다고 또한 자위한다.

이렇게 자식의 미래 그림을 그릴 때마다 분명 나의 뇌 안에서는 빠짐없이 전처리(preprocessing)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까칠,  몸치,  두리뭉실... 과 같은 내 아이들의 약점들은 온데간데없고, 똘똘, 논리, 배려, 자연으로 뭉쳐진 완벽한 엄친아가 그 자리를 채웠을 것이다.
까칠, 몸치, 두리뭉실도 내 아이의 일부인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

이는 내 아이를 "나의 아이"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내 아이는 나의 세포, 나의 유전자를 통해 생겨난 나의 부산물이라는 편견이 내 머리속을 은연중에 지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의 이런 생각들을 아이들은 모두 꿰뚫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내가 자신들의 어떤 면을 부끄러워하고 자랑스러워하는지 너무나도 무섭게 알아차리고 있다.
그 때부터 이미 내 아이들은 자신들의 인생이 아닌 부모의 인생으로 살기 시작하는 오류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아이들이 그 오류의 길에서 30 대에 빠져나올지 40 대에 빠져나올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한 인생행로에서 이는 아이에게 치명적인 시간의 낭비를 가져다주는 셈이다.

내 아이는 "나의 아이"가 아니다.
그리고, 그 누구의 아이도 아니다.

내 아이는 한 인간으로 온전해지는 과정에서 잠깐 우리 부부의 품에 맡겨져 머무르는 존재일 뿐이다.
내 머리와 손끝으로 이 존재들을 프로그래밍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똘똘하고 논리적인 성향이라고 해서 아이의 미래 캔버스에 스리슬쩍 의사와 교수를 그려넣었던 과거.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자연과 동물을 좋아한다면 농부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
똘똘하고 논리적이면 일 잘하는 기계공이 될 수 는 없는가 ?

나를 포함하여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자식이 의사, 변호가가 되기를 희망하는가 ?
혹은 당신이 그렇게 되고 싶었는가 ?
자식이 거대한 부를 거머쥐는 사업가가 되기를 기대하는가 ?
혹은 당신이 그런 부자가 되고 싶었는가 ?

그렇다면, 아이보다는 당신이 먼저 그렇게 되어 보시라.
당신이 먼저 그것을 이룬다면 자식이 그것을 이룰 가능성은 훨씬 커질 것이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자식에게도 그러한 억지기대는 하지 마시라.

기대하지 않는 만큼 자식은 성공한 인생을 살 것이라고 나는 믿어의심치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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