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미루어왔던 토지를 읽으며…

존경하는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항상 언젠가는 읽어야 하는데… 읽어야 하는데…
이런 의무감만 마음 한쪽에 먼지처럼 쌓아둔 채 계속 미루어오기만 하던 차에 우연한 기회에 책꽂이에 고이 꽂혀 있던 토지 전집 중 1 권을 드디어 손에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와이프가 결혼할 때 가지고 온 토지 전집은 1990 년대에 구입하여 상당히 오래된 책입니다.
총 16 권으로 되어 있는데 아마 지금 판매되고 있는 것들은 20 권인가로 권수가 늘어났을겁니다.

그 동안 읽고 싶기는 한데 미루어둔 이유는 너무나 장대한 장편소설이라서 모두 읽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와이프가 학생 때 전집을 모두 읽었는데 아마도 한달인가를 집에 박혀서 그것만 읽었다고 한 것 같네요.
그러니, 얼마나 많은 분량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냥 편한 마음으로 꺼내 읽기 시작해서 회사에 오다가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조금씩 조금씩 읽어서 지금은 4 권째를 읽고 있습니다.
(요즘은 출퇴근 때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어서 책을 못읽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한번에 두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 일일까요 ? ㅠㅜ)

그동안 조정래, 최인호, 황석영, 신경숙, 이문열 등 내노라하는 작가들의 장편소설들을 꽤 읽었습니다만, 왜 모든이들이 토지를 자꾸 대표적인 장편소설로 손에 꼽는지를 이제 좀 알 것 같습니다.
(물론 위 작가들의 작품들 모두 제겐 훌륭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동안 읽었던 다른 소설에 비해 토지가 유난히도 제게 다가온 특징은 그 속에 등장하는 너무나 다양한 인물들입니다.
한 마을에 살고 있는 거의 모든 이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 되고 있으며, 한사람 한사람의 면면이 너무나도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사람 한사람의 일생이 어린 시절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져 있습니다.
마치 여러 사람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는 소설인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들의 내면 묘사가 워낙 뛰어나서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그 사람이 현실 세계의 사람같고, 내가 마치 그 사람을 잘 알고 지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한사람으로서의 인생밖에 살아보지 못한 박경리 선생님이 이렇게 수백명이나 되는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성향, 성장배경, 주변환경, 인간관계 등을 어떻게 이렇게 다양하고 유일무이하게 만들어낼 수가 있었을까요 ?

저 같은 범인들은 그저 신기할 따름이고, 그 작가로서의 철저한 꼼꼼함에 혀를 내두를 뿐입니다.

제가 장편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속의 인물들이 제게 좋은 롤모델이 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현실 세계에서는 자신의 롤모델을 찾아내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특히, 자신이 원하는 롤모델의 수준이 높을수록 더욱 그럴 것 입니다. 그러한 수준의 사람이 주변에 있고, 또한 자신과 가깝게 지낼 확률은 극히 낮을테니까요.
때로는,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지만 서로 가까와질 기회가 없는 경우도 있을테지요.

좋은 작가가 만들어낸 좋은 소설에는 그 좋은 작가가 만들어내고 싶은 다양한 형태의 인물들이 존재합니다. 그런 인물들의 생각이나 행동, 가치관들이 아주 다양하고 섬세하게 표현되고, 그러한 것들이 읽는이에 따라 또 다른 미묘한 차이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러한 속에서 유난히도 제 마음에 강한 이미지로 남는 인물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 인물들은 아마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제 기억속에서 그 소설의 주인공으로 남겠지요.

제 기억에 강하게 자리잡아서 제 생각과 행동에 저도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소설 속의 인물들이 아마도 제 롤모델일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들은 닮고 싶은 사람과 유사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으니까요.

어쨌건 앞으로 토지는 시간이 걸릴지언정 꾸준히 읽어나갈 예정입니다.
아마도 올해는 넘기겠지요.
중간중간 다른 책들도 보게 될 것이구요.

혹시라도 인생에서 한두달의 여유시간이 생기고, 무엇을 할지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저는 그 시간에 토지를 꼭 읽어보라고 권장드리고 싶네요. ^^

끝으로 이젠 저희와는 다른 세상에 계신 박경리 선생님에 대한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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