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물리학자와 삐딱한 법학자 형제의 공부논쟁

‘공부논쟁’은 yes24 에서 다른 책을 구입하면서 충동적으로 함께 사들였는데, 결론적으로는 이번에 구입한 5 권의 책들 중에서 가장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어버렸다.
물리학자인 형과 법학자인 동생의 정치, 교육에 대한 진솔하고 직설적인 대화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동생인 김두식 교수의 경우 “욕망해도 괜찮아”라는 책을 예전에 읽어서 이미 친숙한 분인데, 직설적이고 저돌적인 형과의 대화 진행을 부드럽고 너무 튀지 않도록 다잡아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기억하는 키워드들을 나열해본다.

  1. 진보의 엘리트주의가 항상 선거에서 패배하는 이유다. 항상 자신들이 옳고 남을 가르치려 든다.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고 남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독립적인 사고와 판단을 해야 한다.
  2. 소위 엘리트 진보들은 기득권 우파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 그들 또한 강남좌파일 뿐이다. 행복주택 추진과정에서 사라진 진보 엘리트들의 목소리를 보면 알 수 있다.
  3. 일본은 동종교배를 통해 국내박사들의 생태계를 키워냈고, 이러한 노력이 노벨상 15 회 수상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키운 국내박사를 교수임용에서 떨어뜨리고 해외박사를 선호하는 교수사회 생태계가 주를 이루고 있다.
  4. 장원급제 DNA 와 장인 DNA
  5. 고등학교 뺑뺑이가 과연 창의성을 해치고 영재교육에 반하는 제도인가 ? 과연 천재 한명이 만명을 먹여살린다는 생각이 옳은 것인가 ?
  6. 고등학교 성적이 평생 기득권으로 작용하는 현재의 시스템.  체제 순응적이고 이미 burn out 된 공부 엘리트들이 무한한 호기심으로 무장해야하는 과학계를 이끌어갈 수 있는가 ?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 좌파성향의 정치마인드를 가진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던 나 자신을 처절하게 돌아보게 된다. 스스로 낯빛이 붉어짐을 느낀다.
항상 내가 옳았고 나의 선택과 다른 선택에 대해서는 무시와 조롱으로 일관했었다.

돌아보면 내가 과연 진실로 나의 독립적인 사고를 했었던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나 또한 누군가의 책을 통해, 또는 익숙한 매체를 통해 남의 생각을 읽고 그 생각에 동조하여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떠들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
각종 SNS 에 글을 올리면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의 글에 선동당하는 쾌감에 매료되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보다 조롱과 멸시 자체가 목적이 되지는 않았던가 ?

분명 완성도 떨어지는 나의 글을 읽으며, 또 다른 어떤 사람은 몽당연필처럼 짧은 나의 생각과 억지로 꿰어맞춘 논리를 비웃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형인 김대식 교수의 진보진영에 대한 지적질이 곧 나에게 쏟아붓는 비판인 듯 하여 심장이 바늘로 찔린 듯 찌릿하다.

책의 제목이 ‘공부전쟁’이듯이 이 책은 사실 정치분야보다는 우리나라의 교육 및 대학시스템에 대한 신랄한 분석과 비판, 대안 제시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대학을 이끄는 교수사회의 문제점과 이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하는 행위들, 과학발전에 반하는 선택들이 현업 두 형제 교수의 입으로 적나라하게 까발려진다.
여러 챕터에 걸쳐 심도있는 대화들이 오갔으나 결국은 이 책의 마지막 챕터 제목이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한마디로 표현해주고 있다.

“모든 문제의 출발은 고등학교 성적 기득권”

각 연구실에서 고등학교 수석, 대학교 수석 등의 딱지를 붙인 학생들을 유치하여, 교수 자신들의 기득권과 자존심을 이어가려는 무책임한 행위들이 당연한 관행처럼 이어진다.
서울대에서도 Top 부류들은 유학을 떠나고, 2 단계 부류들은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며, 3 단계 부류들은 타 대학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는다.
그러면, 그 모든 부류들이 원하는 서울대 교수 임용에서는 누가 승리할까 ?
결국은 유학파들이 대부분의 자리를 점령한다.
2 단계 부류들은 지방대학 및 2 류 대학의 교수 자리를 꿰차고, 3 단계 부류들은 그나마 연고대나 카이스트 출신 아니면 모두가 도태된다.
현재 그들의 연구 열정은 중요하지 않다.
서울대 수석 입학에 유학파, 그 중에서도 미국 특정 대학 유학파 출신이면 현재 연구에 대한 아무 열정이 남아 있지 않은 과학자라도 서울대 교수 임용에서 가장 높은 가능성을 선점할 수 있다.

두 형제 교수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이러한 관례들을 처절하게 깨지 않는 한 우리나라가 과학 선진국 또는 기초학문의 선진국이 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부교수에서 정교수가 되는 것이 상당히 어렵고, 정교수가 될 경우 다른 대학으로 부임을 하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는 일본의 대학 시스템이 참 특이하면서도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정교수가 되면서 다른 대학으로 부임해야한다는 것은 결국 능력있는 학자들이 골고루 여러 대학에 분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상향 평준화다.

연구하는 학자보다는 정치하는 기득권 학자에게 유리하도록 변해가는 우리나라 시스템을 보면서 또 한번 암울함이 느껴지기도 하다.
저자들은 이를 장원급제 DNA 라고 표현했다.
일본처럼 장인정신이 살아있는 DNA 가 아니라, 선비사회에서 장원급제로 왕의 부름을 받는 DNA 에 익숙해져 있는 학계에 대한 비판이 마음을 찌른다.

김대식 교수는 자신이 속해 있는 서울대를 폐지해서라도 우리나라의 최상위 대학이 모든 것을 쓸어가는 현재의 기득권 위주 시스템을 갈아엎어야한다고 역설한다.

김대식 교수 자신 또한 어찌보면 전교 1 등 출신 승리자의 입장인 상황에서 얼마나 진심이 담긴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10 대에 낙인처럼 정해져버리는 우리 사회의 인생서열은 우리가 타파해야할 대상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공감한다.
20, 30, 40 대에도 얼마든지 고교 전교 1 등을 역전하여 성공적인 삶을 꾸릴 수 있는 사회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최고의 복지국가가 아니겠는가 ?
결국은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 사회 전반적인 열정의 수치를 끌어올리는 방법이며,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진정한 천재가 나올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추어지는 길이라는 것을 느낀다.
아인슈타인이 아프리카의 과학 인프라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겠는가 ?

만들어진 영재가 난무하는 대한민국은 뼈속까지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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