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증후군

사기꾼 증후군.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으로 들어갔을 때,
나 혼자만 별볼일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현상을 말한다.

좋은 대학에 진학했더니 자기 이외에는 모두 천재처럼 보인다거나,
유능한 인재가 모인 회사로 이직한 후에 느끼는 심한 위축감 등이 사기꾼 증후군에 속한다.

다들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나만이 뭔가 안맞는 옷을 입은 것 같고,
나만 실력이 아니라 운빨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 또한 이직을 할 때마다
최소 몇주에서 몇달 간은 내가 사기꾼으로 느껴지는 시간들을 겪었다.

내가 가는 곳에 있는 기술자들은 모두 개발언어 몇 가지씩은 물론,
TDD, DDD, 함수형 프로그래밍에 상당히 능숙하고,
구현과 리팩토링 시 객체지향과 디자인패턴을 자유자재로 응용 구사하며,
클린코드, 리팩토링, 실용주의 프로그래머 같은 수십 권의 성서들을 기본적으로 다들 몇 번씩 읽고 이를 모두 적용하며 사는 줄 알았다.
그리고, 진정한 프로페셔널로 보였다.
나만 빼고 말이다.

사기꾼 증후군의 존재를 알기 전에는,
이러한 마음의 원천이 내 자신의 부족한 능력과 자격지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모든게 내 탓이었고, 모든 문제 상황에 대해 자책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괴롭혔다.

진단이 잘못되었으니 그 해결책도 좋았을 리가 없다.
미친듯이 자신을 괴롭히며 개인 시간을 모두 바쳐 공부에 매달렸고,
그로 인해 결혼 후 상당기간 동안 부부싸움이 잦고 삶이 피폐해지기도 했다.

누구에게도 이런 상황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나 혼자의 문제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만 성장하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판단했으니까.

이런 상태에 가장 심하게 노출되었던 때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이끌어야하는 리더의 역할을 맡았을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리더는 모든 해답을 알고 있어야할 것 같은 부담감."
조직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에 대한 정답을 내가 제시해야 한다는 감당하기 힘든 짐을 스스로에게 지우고 있었다.
절대 그럴 수 없다는걸 알면서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 수시로 닥치는 현타의 순간들."
리더가 된 이후에 겪는 거의 모든 것들이 인생에서 처음 만나보는 경험들이었다.
그에 대한 해답을 나도 알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괴로웠다.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퇴근하는 동안 운전대를 잡고 남모르게 펑펑 눈물을 흘린 적도 참 많았다.
집에 돌아와 잠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고는,
앞날이 두렵고 무서워 소리없이 베갯잎도 많이 적셨다.

이런 병적인 순간들을 심하게 겪고 난 후,
나는 알게 되었다.

그게 아니라는걸.

나도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개못나지는 않았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내가 모르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태는 아니라는 것을.
자존심때문에 다 아는 체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해야 동료들이 진심으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준다는 것을.
손을 내밀면 의외로 그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그래서,
조금은 부족한 구성원들이 모여 협업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것이 바로 "조직"이라는 것을...

이제는 즐겁다.
여전히 부족한건 마찬가지지만 내가 조금 더 컸다.

우리 모두는 사기꾼이 아니다.
우리가 있을 자리에 있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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