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2차 논쟁

“어머니, 이번에는 그냥 제가 해볼께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봐야 느는거죠.”

아내와 엄마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일도 바쁜데 한참을 실랑이하는 것 같다. 아마도 엄마는 굳이 주말에 오셔서 김장을 도와주신다고 하고, 아내는 이번에는 꼭 혼자 해보겠다고 줄다리기하는 모양이다. 통화가 길어지면서 아내가 살짝 짜증이 나는지 목소리 톤이 조금씩 올라간다. “어머니, 다 해줘 버릇하면 자식이 할 줄 아는게 없어지는 거예요.”

아내의 마음도 엄마의 마음도 어떤 것인지 알 것도 같다. 예전 같으면 엄마의 그런 지나친 배려가 부담스러웠다. 자식을 못믿는거라고 배배 꼬아 해석하는 못난 아들놈이어서, 엄마가 저런 모습을 보이면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왜 다 엄마가 하시려고 하느냐고. 자식의 뜻대로 하게 두고 그냥 믿어주면 안되냐고. 지금 아내의 마음도 비슷할 것이다. 자기도 주부경력 십수년 차인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턱하니 믿고 맡기지 못하는 상황이 오히려 섭섭할지 모른다.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해 시어머니가 맛있다고,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면 훨씬 더 기뻐할 것이다. 사실 아내의 김치 담그는 솜씨는 이미 수준급이다.

엄마의 마음도 상상이 간다. 며느리가 허약체질이라 맨날 허리아파서 큰 일은 못한다고 죽는 소리 하는데, 김장을 약골 며느리 혼자 하도록 두면 마음에 걸리셨을 것이다.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 이런 마음으로 굳이 도와주겠다고 우기시는 것이다. 엄마는 지난 주말에 여동생네 김장도 담가주셨다. 이미 몇일 전에 그렇게 고생을 하셨는데 이번주에 또 오셔서 우리 김장까지 도와주시면 병이 나실까 우려스럽다.

전화를 끊은 아내에게 한소리를 했다. “당신이 평소에 엄마한테 허리아파서 아무 것도 못한다고 맨날 그러니까 엄마가 걱정되서 그러시는거지. 앞으로 엄마한테는 그냥 좋은 소리만 해.” 아내도 수긍하는지 알았어요, 한다. 시어머니의 마음을 아내가 모를리도 없다. 몸 아프다고 죽는소리하면서(아내가 살짝 엄살쟁이다) 김장은 혼자 해보겠다고 하니 앞뒤가 좀 안맞긴 했다. 독립을 하려면 부모의 걱정은 좀 덜어주고 뛰쳐나가야 한다. 어쨌건 일단 김장 1차 준비는 아내와 내가 손발을 맞추어 잘 끝냈다.

엄마에게는 카톡을 보냈다.

“엄마, 혹시나 제가 걱정되서 그러는데 진짜 이번 주말에 오시면 안되요. 오시면 준하엄마가 많이 화낼지도 몰라요. ㅎㅎ 엄마가 우리 고생할까봐 생각해주시는 마음은 잘 알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준하엄마한테 그냥 맡겨보세요. 잘 하잖아요.”

“알았어. 걔가 허리가 안좋으니까 그러지.”

“허리 쓰는 일은 제가 하면 되요. 김장이 무슨 아오지 탄광에 끌려가서 중노동하는 것도 아니고, 젊은 사람이 30 포기 하는거 제가 도와주면 그리 힘들지도 않아요. 그러니 너무 걱정마시고 이번 주말에는 푹 쉬세요~ 김장 끝나면 꼭 놀러오시고~ 아셨죠? ㅎㅎ 이번에는 니가 한번 잘해봐라~하시면 준하 엄마도 며느리로서 시어머니 믿음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아마 더 좋아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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