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반의 개똥철학

내가 아내에게 잔소리하는 경우는 딱 한가지다. 음식을 쉽게 버릴 때.

오늘도 찬밥을 밖에 방치했다가 쉬어서 버리는 아내를 보고 짧게 한소리를 했다. “그렇게 많은 밥을... 땅 파면 쌀이 나와? 어휴…” 이런 잔소리에는 아내도 반박할 말이 없는지 조용하다. 물론 속으로는 부글부글 하겠지만.

아내는 나와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항상 제일 좋아하는 것을 먼저 소비한다. 음식도 가장 맛있는 것부터 먹어치우고, 옷도 좋은 옷, 모자도 자기 마음에 쏙 드는 것을 고르고 골라 결국 좋은 것을 산다. 그렇다고 해서 사치스러운건 아니다. 일단 마음에 쏙 드는 것을 사면 아주 오랫동안 마르고 닳도록 잘 사용한다. 반면에 나는 좋은 것은 아껴두는 성격이다. 정말 먹고 싶은 음식이 생겨도 일단 좀 참고, 이전에 먹다 남은 음식을 먼저 해치운다. 그러니 내 식대로 한다면 음식 남을 일이 없다. 아내는 항상 좋은 것을 먼저 먹어치우니 이전에 남은 음식을 먹고 싶을 리 없고, 그래서 자꾸만 방치하는 음식이 생긴다.

아내는 현재를 중요시한다. 맛있는 것이 눈 앞에 있는데 그걸 지금 먹어야지 왜 뒤로 미루냐는 것이다. 나는 가장으로서 미래와 계획에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미래를 대비하지 않고 생각없이 현재에서 다 써버리면 어떡하냐고 말한다. 아내는 미래 걱정 때문에 현재를 버리고 싶지 않고, 나는 아무 대비 없는 미래가 두렵다. 사실 내심으로는 아내의 그런 성향이 부럽기도 하다. 때로는 아내의 생각에 맞장구치며 나도 현재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내일 당장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판에 10년 후를 계획하며 절제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게다가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는 크나큰 단점이 있다. 먹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남겨두었는데 결국 내일이 되면 그 음식도 잔반이 된다. 최상의 상태는 지나고 결국 해치워야할 대상이 된다. 그러면 나는 제일 좋은 때에 먹지 못하고 방치해둔 시간을 후회한다. 지금 즐겨야하는 것이 있고, 미래를 위해 조금 아껴야하는 것이 있다. 아내의 방식과 내 방식을 적절히 조율해가며 살아가야 하겠다. 무작정 잔소리로 끝낼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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