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이러스인가요

최근에 재건축된 아파트가 있다. 임대동이 일정 비율로 섞인 서울의 한 아파트. 정문에서 6분 이상을 걸어야만 닿을 수 있는 임대동은 분양동들과 멀찍이 떨어져 있다. 교회와 일반건물들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같은 아파트 단지가 아닌 것 같다. 출입구도 따로, 지하 주차장도 따로 사용한다. 서로 공유하는게 단 하나도 없어보이는 동들은 ‘xxx아파트’라는 브랜드 아래 함께 묶여 있었다.

임대동의 주민들은 아파트에서 운영하는 헬스도, 노인정도, 도서실도 이용할 수가 없다. 아이의 고사리 손을 잡고 도서실을 향했던 한 여성은 ‘임대동은 사용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듣고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여성은 그 순간 아이에게 너무 부끄러웠다고 한다. 아이들이 이용하는 놀이터의 질적 수준도 차이가 난다. 임대동과 분양동의 아이들은 서로 분리되어 다른 품질의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한 주민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코로나를 옮게 하는 것도 아니고, 뭐 병에 걸리게 하는 것도 아니고. 함께 사는 사회에 차별을 둘 필요가 있을까요?”

재개발로 세워진 단지는 임대주택을 일정 비율로 짓게 되어 있다고 한다. 기존에는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우선 목적이었기 때문에 동의 배치나 편의시설 등 차별을 막을 수 있는 규정같은 것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뒤늦게 올해부터 서울시가 임대 가구를 구별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TF를 꾸리고 있으나 역시 강제사항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현실과 정확히 반대편의 정책들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국가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독일의 주택정책은 150년간 임대인과 임차인간 치열한 논쟁의 결과를 제도에 반영하면서 발전해왔다. ‘임차인의 나라’. ‘주택약자의 나라’. 주택을 단지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철저히 주거권 관점에서 바라본다. ‘국가 개입이냐, 시장 자율이냐’의 문제보다 ‘주택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본질에 집중한다. 우리나라와 달리 가장 좋은 자리에 장애인과 약자들의 주택을 배치한다. 바이마르 공화국 때 정부 지원하에 지어진 후프아이젠지들룽이라는 다세대주택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고 현재까지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독일의 주택정책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수는 없겠지만 ‘본질’에 집중하는 사회의 모습은 본받을 만하다.

임대동 차별 관련 뉴스에 어떤 사람은 자기 돈을 투자한대로 대접받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왜 그게 비난받을 일이냐는 댓글을 달았다. 돈도 별로 안내고 똑같이 대접받으려 하는 것이 도둑놈 심보 아니냐고. 포퓰리즘, 도덕불감증 등의 얘기를 한다.

정의로운 사회란 무엇일까. 나는 주저없이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라고. 강자를 보호하는 것은 너무나도 쉽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강자에게 빌붙으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본능대로 행동하는 것이 무에 어렵겠는가. 우리 삶에서 가야할 방향은 대부분 어렵고 귀찮은 쪽이라는 것을 안다.

한 네티즌의 댓글이 눈에 띈다.
“스스로 자신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남을 깎아내리면서 스스로를 높일 수 밖에 없다.”

You may also like...

0 0 votes
Article Rating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0
Would love your thoughts, please comment.x
()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