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끊기

회사생활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그것도 매일매일. 내 기분이나 상황따위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매일매일 만나야 한다는 것이, 나는 너무너무 힘이 든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도, 가만히 책에 빠져들고 싶을 때도, 가차없이 나의 감성을 끊고 구글밋에 연결하고 내 얼굴과 목소리를 수시로 노출시켜야 한다. 그리고는 타인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며 조직의 성과를 위해 달린다. 마치 가족들의 삶은 뒷전인 채, 다른 사람일에는 내 일인 듯 분주한 가장의 모습처럼.

이런 일상의 패턴이 나같은 성향의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그럭저럭 잘 버티다가도 일이 삐걱대는 순간이 오면 그 고통은 두 배가 된다. 그런 상황에서는 연결이 더욱 복잡해지고 거칠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사람을 만나는 일이 가장 힘들다는게 아이러니하다. 이것은 20년 전과 지금이 변함없이 똑같다. 다만 20년 전에는 내가 힘들 때 미숙하고 어설픈 표현으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면, 지금은 조금 더 유들유들하게 다룰 수 있도록 노련해졌다고나 할까. 자기 보호 본능이 키워낸 ‘정신적 진화’라고 할 수 있겠다.

몇일 글쓰기를 쉬었는데, 사실 일부 연결만이라도 끊고 싶은 생각이었다. 회사의 연결은 끊어낼 도리가 없지만 그 외의 모든 플러그들을 모두 뽑아버리면 좀 나을줄 알았다. 정지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런데 처방이 잘못됐다. 문제의 발단은 그대로 두고 엉뚱한 연결들만 끊어버리니 무슨 효과가 있겠나. 생각해보면 나를 대면하고 보듬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책읽고 글쓰는 시간인데, 오히려 지켜내야하는 연결을 끊어버린 꼴이 됐다.

삶에서 갖고 싶은 것들은 왜 항상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지, 때로는 화가 난다. 그럴 때는 갖고 싶은 욕심을 조금 덜어내는 것도 인생을 사는 한 방법일 것 같다. 그러면 내 손에 작은 만족이라도 움켜쥘 수 있지 않을까. 20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는 ‘착한사람 증후군’ 따위는 내다버려도 좋다. 그것도 욕심이니까.

인생에 마법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 삶이 참 피곤해졌다.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으니 노력만이 길을 열어준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낚시줄처럼 질긴 회사와의 연결도 종종 냉정하게 끊어내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떠밀려서 겅중겅중 빠르게 사는 삶이 아니라, 덜어내고 멈추는 삶이 내겐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마치 T인 척 살고 있지만, 사실 나는 F에 가까운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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