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의 바램

나는 지금 흡연자다. 수많은 중독의 유혹들을 모두 잘 피해왔지만 담배만은 예외가 됐다. 20대초 친구와 술을 마시다 건네받은 한개비의 담배가 발단이 되었다(보통 이 세상 나쁜 짓은 모두 친구로부터 시작된다ㅎ). 그 담배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자연스럽게 받아물고는 골초인 친구 흉내를 내며 첫 연기를 길게 쭈욱 빨아들였다.

첫 경험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입안 가득 빨아들인 연기를 긴 들숨과 함께 멋드러지게 넘기려고 시도했지만, 나의 순진한 목구멍은 낯선 입자들의 대거 출입을 거칠게 거부했다. 심한 사레가 걸린 듯 한참을 콜록거리며 숨을 토해내고 말았다. 얼굴까지 벌개지도록 기침을 해대고는, 짜증이 나서 이딴걸 왜 피우냐며 담배를 집어던지고 친구에게 욕지거리를 했다. 초짜의 어리숙함이 재밌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첫경험이 생각나서 그랬는지, 친구는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아마도 이런 장면은 모든 흡연자의 공통된 첫 경험일 것이다.

정확히 한달 후, 나는 그 친구와 맞담배를 피며 다시 술을 마셨다. 그로부터 두어달 후에는 볼을 톡톡 두드리며 담배연기로 도너츠를 만들어내는 신통한 기술력까지 갖춘 명실상부한 흡연자가 됐다. 그리고 한손으로 담배의 불똥을 튕겨 털어내는 폼나는 기술까지 익혔다. 그 전에는 불을 끄기 위해 한손으로는 담배꽁초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 손가락을 튕겨서 불똥을 털어냈었다. 다른 친구들은 왼손을 바지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오른손만으로 담뱃불을 튕겨 끄고 있었는데, 손시려운 겨울날 나만 볼품없이 두손을 모두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흡연자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얘기들이라는걸 안다.)

금연을 위한 세번의 시도가 있었다. 한번은 5년을 끊었고, 그 다음은 1년 반, 마지막은 작년에 시도한 6개월이었다. 성공할 듯 성공할 듯 하다가 지금은 피우고 있으니 결국은 모두 실패한 셈이다. 수년전과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연초에서 전자담배로 갈아탔다는 점. 이제 불똥을 튕겨서 끌 일은 없어졌다.

금연을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인간관계와 스트레스라고 생각한다(더 이상 의지의 문제라고 하고 싶지 않다). 흡연자 사이에서는 담배로 쌓이는 정이 밥정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직을 할 때마다 가장 먼저 사귀게 되는 동료도 담친(담배친구)이다. 말 한마디 섞지 못하고 어색하던 사이가, 맞담배질 한번에 소통의 맥이 트이고 서로 살아온 스토리를 알게 된다. 맞담배질 세번이면 친한 사이가 된다. 담친과의 협업이 더 잘 이루어짐은 물론이다. 우린 이미 친한 사이니까. 일이 잘 안풀리는 상황에서는 머리를 쥐어뜯고 있기보다 벌떡 일어나 옆에 앉은 담친 어깨를 툭 치고 고개를 까딱하면 된다(담배피러 나가자는 의미). 그렇게 바깥 바람을 쐬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의외로 막혔던 일이 간단하게 풀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담배를 포기하기가 더욱 힘이 드는 것이다.

담배 예찬론자는 아니다. 하지만 담배가 정신적으로는 많은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담배를 피우다보면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경우도 많은데, 글쓰기를 위한 글감도 마찬가지다. 이 글도 어제 저녁 잠깐 외투를 걸치고 나가서 피운 담배 한개비의 산물이다. 몸에 해롭지 않은, 더 나아가서 몸에 이로운 담배가 나온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아내의 매서운 눈초리를 피해가며 피우지 않아도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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