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아빠의 고백

머리가 꽤나 굵어진 아들놈 둘을 키운다. 몸뚱아리만 어른에 가깝지 사람구실하려면 아직 멀어서 아직 한참을 더 키워야 한다. 그런데 두 놈이 어쩜 그리 다른지 참 신기할 때가 많다. 한놈은 공부를 제법 하는데 친구가 없고, 작은 놈은 일찍이 공부와 철담을 쌓았지만 주변에 친구로 들끓는다. 한놈은 히키코모리가 될까 두려워 햇빛 좀 쐬고 오라며 밖으로 쫓아내야 하고, 한놈은 전화받고 외출했다하면 어둑어둑해져야 얼굴을 볼 수 있다.

부모는 자식의 티끌들만 귀신같이 찾아내는 특징이 있나보다. 앞으로 요놈들이 살아갈 험한 세상을 생각하면, 인맥이 좁은 큰놈도 걱정이고, 자기 할일을 게을리하는 작은놈도 걱정이다. 머리속으로는 아이들의 장점을 키워 선순환을 만들어주자고 다짐하건만, 얼굴만 마주치면 한쪽에 묻어두었던 잔소리가 깨어나 불쑥 먼저 튀어나온다. 큰놈에게는 살아가면서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작은 놈에게는 살아가면서 ‘무거운 엉덩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잔소리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때그때 달라진다. 아이들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나부터 일관성을 가진 부모가 되는 것이 우선이지 싶다.

냉혹한 생태계에서 사람구실을 하려면 ‘인간관계’도, ‘자기주도학습’도 모두 중요하다는걸 나는 경험적으로 안다. 유전자에 미리 박혀 태어난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수백번을 깨지며 배운 것이다. 내 몸과 마음 곳곳에 삐쳐나온 수많은 첨탑들이 외풍에 수십년동안 두들겨맞고 잘려나가 둥글둥글해졌다. 사포로 갈아낸 민둥산처럼 이젠 이래도 허허, 저래도 허허거리며 실없고 특징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게 정답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세상사에 너무 뾰로통하지 않고, 거대한 물결에 몸을 실어 작은 돗단배처럼 흘러가는 것이, 우리 같은 보통내기들이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자위하며 살아간다. 나는 이렇게 게으르고 무력한 방식으로 세상에 적응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같은 방식을 강요하고 있다. 자식의 변화무쌍한 롤러코스터 삶보다, 사회의 시선에 어긋나지 않는 무난한 삶이 부모된 내게 마음의 안정을 주기 때문일거다. 벅찬 내 삶에 더해 자식의 삶에까지 애달프고 싶지 않은 이기심이 아닌가 관찰해본다. 꼰대의 가치관으로 아이들을 그저 세상 무지렁이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수시로 고민한다. 세상의 망치질에 까이는 자식의 모습을 차마 지켜볼 용기가 없어 지레 겁먹고 내 손에 사포를 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쌔근쌔근 잠들어있는 두 놈의 얼굴을 보며 생각한다. 그리고 혼잣말로 속삭인다. "얘들아, 겁쟁이 아빠라서 미안해. 아빠가 뭐라 하든 너희는 너희의 방식대로 살아가렴."

You may also like...

0 0 votes
Article Rating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0
Would love your thoughts, please comment.x
()
x